해는 바뀌었고 달력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추위는 사그라지거나 덜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세력이 점점 더 강해지는 듯합니다.

벌써 계절은 돌고 돌아 겨울에 이르렀습니다.
바람은 그 끝에 가시를 달고 불어와 우리의 온몸을 아프게 합니다.
그 덕분에 우리는 하루가 더 힘겹게 느껴집니다.

날이 추워지면 추워질수록 이상하게 길거리 음식에 유독 눈이 갑니다.
날이 춥다면 따뜻한 실내에 당연히 들어가고 싶음에도 추위에 덜덜 떨며 먹는 떡볶이와 순대 어묵 꼬치가 더 맛있게 느껴집니다.
그것은 길거리 음식이 저렴한 탓도 있지만 아마도 뽀얗게 올라오는 연기와 빨간 천막이 주는 분위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렇게 몸서리가 쳐질 만큼 추운 날에는 따뜻한 청주 한잔이 생각납니다.
다른 술과 달리 따뜻하게 데워 마시는 청주는 술이라기보다 술 향기가 진한 차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중에서도 겨울에 가장 잘 어울리는 차 말입니다.

쉬지 않고 몰아치는 추위 탓에 온몸에 힘을 주고 하루를 보내는 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실내에 들어서면 추위에 얼었던 몸이 녹으며 온몸이 흐물흐물해지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틈을 비집고 피곤함이 쏟아집니다.

이번 겨울도 얼마 남지 않은 듯합니다.
졸업 시즌을 앞두고 있으니 말입니다.
초등학생에서부터 대학생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단계를 마쳤다는 기쁨과 새로운 세상에 도전해야 하는 설렘이 공존하는 시기입니다.

제가 초등학교와 중학교에 다니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교실마다 난방시설이 제대로 설치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겨울이 되면 교실 가운데에 짙은 갈색의 난로가 하나 놓일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매일 아침 우리는 당번을 정해 목탄을 가져와야 했습니다.

어제부터 내리던 눈이 새벽녘까지 이어지더니 오늘 아침에는 온 세상을 하얗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이런 날 아침 창을 열고는 기쁨의 소리를 질렀는데 나이가 든 지금은 출근길이 걱정되고 막힐 도로를 생각하니 짜증이 밀려옵니다.
어린 시절 이렇게 눈이 많이 내린 날에는 평소보다 등교를 서둘렀습니다.

이렇게 추위가 극성인 날에는 잘 익은 군밤과 군고구마가 생각납니다.
지금이야 전기로도 밤을 굽고 고구마를 쪄내지만 제가 어릴 적 군밤을 팔고 군고구마를 팔던 아저씨들은 커다란 드럼통에 구멍을 내 나무로 불을 지펴 고구마를 익히고 밤을 구워냈습니다.
드럼통에 달린 손잡이를 잡아당기면 잘 익은 고구마가 줄지어 나왔지요.

겨울이 되면 바짝 말라버린 공기 탓에 얼굴도 입술도 바짝바짝 말라가는 듯합니다.
이렇게 건조한 날에는 학창시절 교실 가운데 자리 잡고 있던 난로 위에 소리 없이 하얀 김을 뿜어내던 노란 주전자가 생각납니다.
주전자에 물을 담아 난로 위에 올려놓으면 온종일 주전자는 가습기의 역할을 톡톡히 해내었습니다.

겨울이 추운 이유는 찬 바람이 몸을 얼리고 차가운 대기가 체온을 뺏어가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외로움과 쓸쓸함이 더 진해지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겨울은 몸보다 마음이 더 시린 계절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른 계절이야 창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에 바람에 실려 오는 온기에 마음속 냉기를 덜어낼 수 있었지만, 겨울은 창으로도 바람으로도 온기를 만날 수 없으니 말입니다.

날이 추워지며 대기가 우리의 체온을 뺏어가고 바람이 우리의 체온을 멀리 실어가는 듯합니다.
그렇게 손실된 체온을 보충하려는 마음 탓인지 누군가의 따뜻한 체온이 그리워집니다.
이 체온은 누군가와 피부를 맞닿아 나눌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 미소 한 번으로도 충분히 전해집니다.

날이 추워지면서 우리는 몸을 자꾸 움츠리게 되고 작게 포개게 됩니다.
양손은 주머니에 박혀 있거나 다른 쪽 겨드랑이에 숨겨져 있고 목은 자라처럼 목도리 안으로 자꾸 움츠러듭니다.
발은 걷는 것이 아니라 동동거린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보폭은 좁아지고 걸음은 빨라졌습니다.

연일 쏟아지는 눈으로 말미암아 벌써 스키장에 수많은 인파가 몰리고 있다고 합니다.
겨울 스포츠를 좋아하는 이들은 이 겨울이 오기를 손꼽아 기다렸을 것입니다.
스키나 스노보드를 타 본 분들은 아시겠지만 하얀 설원을 가르며 달리는 느낌은 평지를 달리는 것과는 사뭇 다릅니다.

한번 태어남을 겪은 모든 것은 죽음을 향해 가는 듯합니다.
단지 차이가 있다면 어떤 것은 그 마지막을 준비하고 어떤 것은 그렇지 못한다는 것이겠지요.
우리 인간을 제외한 자연의 모든 것은 마지막을 스스로 준비하고 그것이 초라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땅 위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얼려버릴 기세로 몰아치는 바람과 하늘에 분명히 해가 떠 있음에도 그 따뜻함을 느끼지 못할 만큼 차가워진 대기는 어린 시절 외가댁에 있던 따뜻한 아랫목을 생각나게 합니다.
외할아버지는 겨울이 되면 장작을 잘 쪼개 마당 한쪽에 쌓아두시고는 그 장작으로 저녁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셨습니다.
바짝 마른 나무가 빨간 불길 속에 타들어 가는 만큼 방바닥은 온기를 더해갔습니다.

아마 우리 몸을 이루고 있는 뼈에는 아주 작은 구멍이 나 있는 듯합니다.
아니 뼈뿐이 아니라 우리의 피부도 현미경으로 관찰해보면 틀림없이 촘촘한 구멍으로 이루어져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피부를 뚫고 뼛속까지 스미는 찬바람을 설명할 수 없으니 말입니다.

봄이 연한 연둣빛과 색색의 꽃 빛깔로 계절을 노래하고 여름이 진한 초록빛으로 싱그러움을 자랑하고 가을이 화려하게 물든 단풍으로 대표되는 계절이라면 겨울은 무엇도 뽐내려 하지 않는 소박하고 청초한 계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겨울 하면 떠오르는 색이 흰색이니 말입니다.

한번 떨어진 기온이 오를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요즘 가장 그립고 가장 고마운 것이 있다면 한낮에 잠깐씩 비춰주는 햇살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여름에는 그리도 지긋지긋해 도망 다니기 바빴고 봄 가을에는 한낮의 햇살이 만들어낸 일교차로 고생하기에 고마움을 잊고 지냈습니다.

겨울만큼 흰빛이 가장 잘 어울리는 계절이 있을까 싶습니다.
또 흰빛만큼 겨울을 잘 드러내는 색이 있을까 싶습니다.
하얀 눈이 있기에 겨울이 삭막하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요 하얀 눈이 있기에 나뭇잎을 떨군 앙상한 나무가 초라한 제 모습을 감출 수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